사진 출처
이상옥, 그리운 외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최초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다
무소는 다름 아닌 인도코뿔소다
아프리카코뿔소는 뿔이 두 개지만
인도코뿔소는 정신의 뿔을 베어버리고
육체의 불 달랑 하나다
무리 짓지 않고
혼자서 길 가는 외뿔이다
아, 나는 너무 관념주의자다
손진은, 별의 잠
책장을 열자 누가 끼워놓은 납작한 구절초
꽃판 뒤에 깃들었던 점 같은 벌레들
느리게 흩어진다 저마다의 추억을 끌고
밤하늘에 뜬 잔별 같다
다음날 보니 그들은 잠들었다
하늘이 품어 기르는, 바람이 스치면 뒤척일 것 같은
맑고 착한 별의 순한 잠
숨결이 배어져 나올 듯하다
먼 조상이며 새끼 목숨이라는 말이 후욱, 내 가슴 골짜기에 번져간다
김용택, 남쪽
외로움이 쇠어
지붕에 흰 서리 내리고
매화는 피데
봉창 달빛에
모로 눕는 된소리 들린다
방바닥에 떨어진 흰 머리칼처럼
강물이 팽팽하게 휘어지는구나
끝까지 간 놈이
일찍 꽃이 되어 돌아온다
이경임, 불청(不請)
초대도 않았는데 두통이 찾아왔다
밤눈은 소리없이 창가에 쌓여 가고
일어 설
기미도 없이
바람만 적막하다
어차피 내 안에서 오늘밤 묵을 테니
순하게 자리 내주며 바라보는 먼 불빛
소홀한
대접조차 겨운 듯
착하게 잦아든다
장혜승, 물은
물은
둥근 기억을, 모난 기억을
피고 지는 꽃들을 떨쳐버리고 간다
자신을 걸러내며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간다
물은
되돌아오지 않는 길을 택한다
연민도 증오도 오래 품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뭉쳐진 곳은
많을수록 고요하다